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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planning

기획과 디테일의 대가, 봉준호 감독

오늘, 2020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각본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작품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출연진 모두에게 축하를 전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사입니다. 제가 본 영화는 살인의 추억(Memories of Murder), 괴물(Host)인데요. 아주 잊을 수 없이 생생히 각인되었던 영화죠. 인터넷에서 봉준호 감독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좋은 글을 만났습니다.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41970

 

 

 

“저는 서로 섞일 수 없는 아주 이질적인 것들을 한 화면에 섞어놓는 것을 좋아해요.” - 베를린 마스터클래스, 2015년 2월 12일
봉준호 영화에는 항상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도시 형사와 시골 형사, <괴물>에서 한강에 뜬금없이 괴물이 나타난다는 아이디어, <마더>에서 범죄와 광기에 휘말린 국민 엄마, <설국열차>에서 빈민들의 꼬리 칸과 호화로운 객실, <옥자>에서 산골 소녀와 뉴욕 글로벌 기업 등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피사체가 한 화면에 잡힐 때 영화의 긴장감은 배가됩니다.

출처: http://hub.zum.com/ziksir/20355



 

 

 

"낯선 것 익숙하게 보기, 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봉준호 감독이 늘 취하는 방식과 같은 말이죠. 제가 최고의 금언(maxim)으로 삼는 글귀입니다. 예전에 광고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이노션에서 근무하던 CD(Creative Director)였습니다. 여자분인데, 아주 똑똑한 분이었죠. 광고는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가운뎃 부분 어딘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낯설어버리면 사람들이 "저건 뭐냐?"하고 등을 돌리기 쉽고, 너무 흔하고 익숙한 모습이면 웹툰 '마음의 소리'에서 소심한 조석처럼 "괜찮아. 너무 자연스러웠어"라고 읖조리고 전혀 들키지 않는 것과 같아서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하는거죠.

 

 

 

익숙함과 낯설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간단히 그래프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예를 든다면, 가족의 생일날 케익에 늘 꽂는 가느다란 양초를 꽂지 않고 굵은 흰 양초를 켠다든지, 아이패드의 유명한 그림그리기 app인 procreate app으로 일차함수 그래프를 그려본다든지, 백의 자릿수 나눗셈을 자리가 헷갈려 잘 못하는 아들을 위해서 격자무늬 모눈을 아랫 레이어에 그려놓고 나눗셈 공식을 적어본다든지 하는 것이, 제가 평소에 시도해보는 것들입니다. 또, 배틀그라운드 게임의 경험을 가지고 외로운 한 인간의 인생을 논할 수도 있고, 원두 드립커피를 내리는 과정이나 슬라임 놀이를 통해 분해, 분석, 융합, 재창조의 과정을 비유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약간의 관찰과 이종간의 결합, 이렇게도 붙여보고 저렇게도 붙여보는 편집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아이패드는 수학문제를 푸는 연습장이다!

 

저는 업무의 커리어를 영상PD로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촬영하고 편집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죠.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니 그 모든것에 앞선, 기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다행이지요.

 

"어떤 현상을 접하고 나서 어떤 새로운 관점이나 생각이 생기는가,
그 현상을 해석하고 때로는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면 잠깐 그 현장을 벗어나야합니다. 살짝 멀찌감치 바라볼 수도 있어야하고, 그냥 어렵다면 드론이라도 띄워서 앵글을 달리해야합니다. 물리적으로 어려우면 잠시 내려놓고 낯선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벗어나지 못한다면, 매번 가던 카페가 아닌 동네 카페를 처음으로 가 보는 것도 머리를 맑게 하기도 합니다.

 

위의 것이 선행되고 나면, 표현방식은 다양합니다.

에세이로, 소설로, 희곡으로, 드라마대본으로, 시로, 시조 한 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진촬영으로, 이미지사진을 구해서, 사람을 인터뷰해서, 동물을 촬영해서, 그림을 그려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춤으로, 판소리극으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혀 백그라운드가 없으면서도 파이썬 코딩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처참하리만큼 비극적인 드라마도 희극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우리의 삶도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더라도, 어이없는 쓴 웃음, 피식 웃음이 나는 구간이 있습니다. 잠깐만 제3자인 척 해보세요. 인생도, 업무도 달라질 겁니다.

 

(참고할 만한 서적: 기획의 정석, 기획자의 습관, 정철의 카피책, 관찰의 힘)